저희 부모님은 작년에 은퇴를 하셨습니다. 70이 넘는 나이까지 평생을 열심히 일하셨지만 아쉽게도 노후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모님을 보며, 나 역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늘 의문이 들더라구요. 돈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돈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길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읽게 되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는 수많은 파이어족과 경제 공부를 하는 사람들, 금융 지식을 다루는 사람들이 손꼽는 필독서라는 말에 이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먼저 EBS 다큐멘터리로 접했던 내용이지만, 책에는 더 상세한 설명과 사진이 실려 있어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2013년에 출간되어 10년 전의 데이터가 담겨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핵심을 짚는 맥락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돈은 빚이다 - 자본주의의 충격적 실체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빚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라는 1장의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빚지는 일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빚은 남의 돈이기 때문에 빌렸다면 최대한 빨리 갚아야 하고, 빚 없이 스스로 번 돈만으로 살아가는 생활을 꾸려야 한다고 배우죠.
그런데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달라요. 빚이 없으면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즉,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빚이 없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고, 빚이 있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뒤집힌 논리가 성립됩니다.
왜 그럴까요? 책에서는 우리가 은행에 100원을 예금하면, 은행은 10원만 남기고 나머지 90원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구조를 설명합니다. 그러면 나의 통장에는 100원이 찍혀 있고, 대출받은 사람의 통장에도 90원이 찍혀 있어 갑자기 190원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대출이라는 과정을 통해 90원이라는 새로운 돈이 창조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돈이란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은행이 창조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라는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금융 지능의 필요성
2장에서는 '위기의 시대에 꼭 알아야 할 금융 상품의 비밀'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는 은행을 정직한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을 다루는 곳이니까 정확하고 투명할 것이라 생각하죠. 하지만 책은 은행이 결국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더 위험한 상품에 가입해야 합니다. 고객들이 안전한 상품에만 투자하면 고객에게 돌아가는 이자도 낮아지고, 은행이 벌 수 있는 이익도 낮아집니다. 그래서 은행은 판매 수수료가 많은 펀드를 권하고, 보험 담당자는 수수료가 높은 보험을 권합니다.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금융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저자는 금융 상품에 투자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기 원한다면, 우리도 공부를 해야 하고 금융 상품의 함정과 숨어있는 이면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소비는 감정이다
3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지갑이 털리는 소비 마케팅의 비밀'에 대해 설명합니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킵니다. 과거에 소비란 단순히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것이었지만, 차고 넘치는 자본주의의 생산품들을 모두 소비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권장하거나 심지어 강요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첨단 기술과 심리학이 동원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소비 행동은 95% 이상 무의식이 결정한다고 합니다. 먼저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후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합리화한다는 것이죠.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불안할 때, 우울할 때, 화가 났을 때 사람들이 더 쉽게 구매한다는 연구 결과였습니다. 홈쇼핑에서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면 왠지 지금이 아니면 못 살 것 같은 불안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간극을 메우기 위한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복지 자본주의의 가능성
5장에서는 '복지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에 대해 논의합니다. 자본주의를 버릴 수도, 실패한 공산주의를 다시 불러올 수도 없다면, 고장난 자본주의를 어떻게 고쳐 쓸 수 있을까요?
저자는 자본주의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소득의 불균형에 접근합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되는데, 지난 20년 동안 소득의 대부분이 최상위층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인류가 부를 생산해내는 최적의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장점을 살리면서 소득 불균형을 보완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사회적 안전망, 즉 복지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복지가 오히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저소득층의 소비가 고소득층의 소비보다 경제 활성화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복지가 탄탄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낮은 사회에서는 창의적 도전을 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나침반
이 책을 통해 깨달은 가장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에 대해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경제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과 내 가족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입니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돈은 빚이고, 이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나라의 금융 정책은 어떻게 바뀌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대출을 권유하고 흥청망청 써도 괜찮다고 유혹해도,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와닿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우리가 매일 참여하고 있는 경제 시스템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지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바다 위에서 우리는 그저 작은 배를 타고 파도에 휩쓸릴 뿐, 그 바다의 깊이와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 월급의 절반 이상이 통장에 찍히기도 전에 사라지는 이유, 열심히 저축해도 자산이 느는 것보다 물가가 더 빨리 오르는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평생 일해도 왜 여유롭지 못한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결국 '빚'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창출하고, 그 순환 속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되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나면, 적어도 내가 그 희생자가 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룰을 이해하는 것이 게임에서 이기는 첫 번째 단계인 셈이죠.
2013년에 쓰인 책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더욱 명확하게 그 통찰력이 빛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금융위기, 양극화... 이 모든 현상이 자본주의 구조에 내재된 것임을 알게 되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이 게임의 룰을 일찍 가르쳐,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 리뷰는 개인적인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인용된 내용은 저작권법에 의한 공정한 이용의 범주에 해당합니다.